선각국사 도선     혜철국사와 제자 선각국사 도선과의 관계
              
    인악대사
                 
동진대사
                 
원효스님            원효의 발자취을 찾아서
                                             
 원효가 이 석굴에서 수도하여 진리를 깨달았다고 전한다하는  서당굴(誓幢窟)
                                             
 불광산 장안사 척판암과 천성산(원효산) 내원사.
                 
심지왕사스님
                 
보조국사지눌     범해 선사의 (동사열전)의 보조국사 지눌의 이야기
                                           
  보조국사의 선사상  

 

 

 

 

 

 

 

 

 

 

 

 

 

 

 

동진대사

 

 

 

   명산 명찰치고 고승들의 수도처가 아닌곳이 있으라먄, 사지를 잃어버린 부인사로서는 이렇다 할 스님이 머룰렀다는 물증을 확보하기가 어려운데 기이하게도 범해선사가 쓴 동사열전과 삼봉 정도전(?~1398)이 지은 삼봉집에 각각 동진대사와 주지 우운스님에 관한 기록이 있다.

  삼봉집에 관한 기록은 당시 거찰이었던 부인사에 우운을 주지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나 우운이 어떤 스님인지는 묘사되어 있지 않는 반면, 동사열전의 동진대사조에는 스님의 일대기가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어 잠시 옮겨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풍수지리설의 비조인 도선의 수제자가 경보스님인데 이 경보스님의 출가지가 부인사라는 사실이다.

  경보스님는 공교롭게도 스승인 도선과 같은 전라도 영암 구림에서 경문왕 8년(868) 그의 어머니께 흰쥐가 푸른 유리구슬 한 개를 물고와 "이것은 매우 드문 기이한 보물이며 불가의 최고 보배입니다. 품안에 있으면 부처님 호념이 따를 것이고, 나면 틀림없이 광채를 발할 것입니다." 라고 하는 이상한 굼을 꾸고 잉태하여 태어났다.

   그가 불도에 입문하기를 간청하니 마침내 부모들이 울면서 스님 되기를 허락하여 이곳 부인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24세 되던 해 당에 가 불경을 공부하고, 후백제 견휜 30년(921년)에 귀국하여 견휜으로부터 "스님을 만난 것은 비록 늦었지만 제자 되는것 이야 왜 꾸물대겠는가." 하며 완산주에 있는 남복선원에서 주석해 달라는 청을 받았으나 "새도 머물 나무를 가릴 줄 아는데 내 어찌 박이나 오이처럼 한 곳에만 달려 있어야 한단 말이요?" 하면서 백계산 옥룡사로 들어가 고려조 태조, 혜종, 정종 세 임금의 스승이 되어 불법을 펴다가 어느 날 목욕재계한 뒤 사내 대중 모두 뜰 앞에 모이게 한 후 "내 이제 떠날 것이니 여러분들은 부디 여기 머물며 정진하라." 는 유훈(遺訓)을하고 돌아가니 그때가 부모로부터 몸을 보전받은 지80년 법랍62년 정종 3년(948)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이 친히 조사를 써 주고 시호를 동진, 탑호를 보운이라 했다는 스님이다.

  동진대사의 스승인 선각국사 도선은 은해사 창건주 혜철국사의 수제라로 일반인들에게는 풍수로 알려진 비보 사탑설의 이론을 편 선종계의 스님이다.
 

    따라서 신비한 사실은 이러한 선종의 맥이 혜철(은해사 총주)-도선(옥룡사) -경보(부인사)로 이어졌다는 묘한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