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각국사 도선     혜철국사와 제자 선각국사 도선과의 관계
              
    인악대사
                 
동진대사
                 
원효스님            원효의 발자취을 찾아서
                                             
 원효가 이 석굴에서 수도하여 진리를 깨달았다고 전한다하는  서당굴(誓幢窟)
                                             
 불광산 장안사 척판암과 천성산(원효산) 내원사.
                 
심지왕사스님
                 
보조국사지눌     범해 선사의 (동사열전)의 보조국사 지눌의 이야기
                                           
  보조국사의 선사상  

 

 

 

 


 
 

 

 

 

 

 

 

 

 

 

 

 

 

 


 

 

 

 

 

 

 

 

 




 

 

 

 

 

 

 

 

 

 

 

 

 










 

 

혜철국사와 제자 선각국사 도선과의 관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도선'은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풍수지리설의 비조다.

    비록 같은 시대 중국에서  들어온 도참설에 의해서 오랜 세월 동안 그 역기능도 만만치 않았으나, 알고 보면 이는 스님의 불교적인 바탕에서 주창한 비보사상(선을 심고 길함을 양양시키는)을 잘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할 다름이다.

   우리들은 스님이 당시 퇴보해 가던 불교를 다시 일으켜 보려는 의도에서 밀교 사상을 근저(根底)로 제시한 비보사상이 도참 또는 참위설과는 판이하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도선 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정리한 책 도선의 신연구 내용 중에서 팔공산 은해사 창건주 혜철국사의 수제자이고, 도선의 수제자 경보는 부인사에서 계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스님은 은해사 창건주 혜철국사의 제자이고 그 스님의 제자가 부인사에서 머리를 깎은 사람이라니, 아무리 국토가 좁다기로서니 범상한 인연이 아닌 것 같아 혜철국사와 제자 선각국사 도선과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하였다.

   혜철국사의 자는 청보이고 속성은 박씨로, 원성왕 1년에 경주에서 태어났다. 15세에 출가, 해동 화엄종 초조 의상이 창건한 부석사에서 22세로 구족계를 받았다.

   814년에 입당, 육조 혜능-임제-서당 지장으로 이어지는 남종선을 공부하고 26년만에 귀국하니 그의 나이55세, 즉 신문왕 원년(839)이다.

   무주 쌍봉란야에서 9년을 머물다가 63세인 문성왕 9년(847)에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감하니 왕이 '적인'이라는 시호를 추증했다.

   혜철 스님이 은해사를 창건한 것은 대체로 헌덕왕 원년(809)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보를 보면 이는 스님의 은해사라는 이름이 해인사였으며 위치도 지금과는 달리 운부암 아래였다고 한다. 사명이 지금과 같이 바뀌고 위치 또한 현재 장소로 옮긴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1546)이다.

   문성왕이 사신을 보내 나라를 다스릴 근본을 물어 오자, 소를 올리니  그 내용이 아주 시의적절하여 왕이 매우 기뻐했으며, 동리산축망치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고성 동리산의 태안사는 혜철국사가 교화를 편 도량이다. 창건 할 무렵, 그 고을은 수많은 모기들이 들끓었다. 국사가 신통력으로 모기를 쫓아내자 산 오른편 고개로 날아갔다. 이렇게 하여 절을 세우니 그 뒤로는 한 마리의 모기도 없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모기들이 날아와 골짜기를 메우니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으며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마침내 신도들이 뜻을 모아 도량을 보수하니 모기떼가 자취를 감추었다." 는 것이다.

   또한 태안사 법당 상량문에는, "우리나라의 남쪽에는 명산이 허다한데 동리산도 그 중 하나이다. 신라이래 훌륭한 스님을 많이 배출했는데 혜철 노스님은 둘도 있기 어려운 독보적인 분이다. 스님의 명성이 드날려 사람들이 다투어 찾아와 귀의하니 절은 창건된 이후 국사의 교화를 계기로 가장 크게 확장되었다. 그것은 아마 그의 도와 덕이 높고 깊은 경지에 이른 까닭에 그토록 크게 펴진 것이 아니가 한다." 하는 기록이 있어 스님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도선은 신라 흥덕왕 원년(826) 전라도 영암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강씨가 꿈을 꾸었는데, 어떤 사람이 맑은 구슬을 주어 삼켰더니 잉태되었다고도 하고, 또는 겨울 우물 속에 있던 오이를 먹었더니 잉태되었다고 하는 두 가지 설화가 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으니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웠다. 어느 날 숲속에 아기를 버렸더니 난데없이 비둘기들이 젖을 먹여 보살피는지라 다시 데려다 키웠다고 한다. 도선이 태어난 곳의 지명, 구림은 이러한 연유로 지어진 이름이다.

   동사열전을 보면, 13세에 당나라로 들어갔다고 하나 많은 사람들은 이 기록을 부정한다. 따라서 스님이 당승으로부터 배웠다는 풍수설도 사실이 아니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대개 스님의 일생을 5기로 나누는데

 제 1기를 태어나서 15세까지의 유년기
         너무 어린 시절이라 별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없고,

 제 2기를 15세부터 20세까지의 화엄 수학기
         출가하여 화엄사에서 불경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데, 일년도 못되어 제 뜻을 통달했다고 한다.

 제 3기는 20세부터 23세까지의 서종 수련기
         동리산 혜철문하에 들어가 교학을 버리고 선을 공부하는 시기인데 이때  혜철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동사열전은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신라 문성왕 8년(846)에 이르니 도선의 나이 20세라, 이 무렵 혜철대사가 당나라의 서당지장으로
         부터 밀인을 전수받고 와서 전맘 곡성 동리산에서 개당(開堂, 새로된 주지가 처음 설법하는 의식)
         설법하니 배우는 이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교학을 공부하고 있던 도선은 이때 혜철국사의 선문으로
         들어가 제자되길 청하니 나이 23세에 마침내 구족계를 받았다."

 제 4기는 23세부터 37세가지의 방랑 수련기
         선종계의 스님들이 그러하듯 방랑하며 수련하는데 이때 방방곡곡을 두루 섭렵한다. 그는 운봉산,
         태백산을 유람하기도 했는데, 어느 이인(異人)으로부터 풍수설을 전해 받은 것도 이때가 아닌가
         한다.

 제5기는 15년이라는 긴 방랑의 세월을 보내고 37세부터 백계산 옥룡사로 들어가 입적하기까지의 시기
         37세가 되어서야 광양의 백계산 옥룡사로 돌아와 이른바 옥룡산문을 이루는 시기로 교세가 상당한
         규모에 이르렀을 때 입적하니 효공왕 2년(898), 세수가 72세다. 왕이 요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후 고려조 인종이 선각국사라는 존호를 주었다.

   현재 도선의 저작으로 알려진 책은 도선밀기 1권 1책, 도선비결기 1권1책, 삼전운기비록 3권1책, 선각국사찬사 2권 1책, 도선답산가 1책, 도선비기 옥룡집 도선명당기 삼각산명당기 옥룡사문답 도선산수기등으로 알려저 있으나 대부분 현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선의 이름을 가탁한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도선이 전적으로 풍수사상과 관련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도선은 당시 불교계를 풍미했던 선종계의 선승으로 특히 토속신앙 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밀교를 깊이 연구한 스님이다.

    밀교는 수호도량을 설치하는데 있어서 산천을 매우 중시했는데 그 이유는 전국토를 하나의 만다라로 보고, 길지를 선정하여 절이나 탑, 부도를 세우므로 여러 불보살의 도움을 받아 그 신력에 의해 국태민안과 도를 쉽게 깨우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밀교적 바탕에서 마련된 풍수사상을 일러 비보설 또는 비보사탑설이라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일은, 고려 태조가 "도선이 점정한 곳외에 함부로 사원을 세운다면 곧 지덕이 손상되어 조업이 영원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유훈을 내림으로써 고려에 있어서 도선의 위치는 확고해졌으나, 반면 여말(麗末) 묘청같은 승려가 도참설을 도선과 결부시킴으로 도참승으로서의 부당한 자리매김을 받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이다.

   밀교의 택지법을 소개하면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① 관지상법
        지형이 갖추고 있는 외적인 조건, 즉 지세,유형,무속,유수등 땅 모습을 보고 길지와 흉지를 판단.

    ② 관지질법
        땅 재부의 성질을 감별하여 길 흉지를 알아내는 관지질법이고

    ③ 치지법
        위의 두가지 방법으로는 길지를 선택한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흉지를 다스려 길지로 변화시키는.

   최근 호화분묘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많은 물의가 있어도 어떻게 하든지 길지를 택해 자손대대로 영화를 누려 보고자 하는 졸부들이 끊임없는 욕망과 이에 편승하여 도선의 이름을 빌려 명지관을 자처하는 지사들이 날뛰는 현실을 볼 때 스님의 거룩한 뜻이 너무나 황당하게 오도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