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사(安逸寺)

 

 

 

   안일사 절이 옛날에 어느 임금님이 가다가 물 좋고 정자 좋고 해서 앉았다 갔는 자리라 해서 안일사라 불렀다고 한다. "안지랑이"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 임금이 앉았던 자리라 해서 안지랑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곳의 물이 참 좋아서 땀띠를 씻으면 다 나았다고 한다.

   팔공산(八公山)과 비슬산(琵瑟山)으로 둘러싸인 대구의 남쪽, 비슬산 기슭에 자리한 안일사(安逸寺)는 특이한 사명(寺名)으로 불자와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안일사(安逸寺)의 창건과 절 이름에 얽힌 역사는 이 사찰이 범상한 곳이 아님을 밝혀주고 있으니 그런 것일 것이다.

   안일사(安逸寺)는 창건 이후 우리 나라의 모든 명산대찰이 그러하듯 전란을 거치면서 불에 타거나 파괴되어 창건 당시의 모습을 지키진 못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이며 3. 1운동을 주도한 33인중의 한 분이신 백용성 스님께서 중창하신 것으로 대웅전, 해탈문, 종각,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안일사(安逸寺)의 외양은 비록 오랜 세월에 걸쳐 풍상을 겪으면서 쇠락해졌으나 아름다운 산, 깊은 계곡, 맑은 물과 함께 중생을 구제하는 자비정신만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빛을 발했다고 자랑한다. 일제 시대인 1915년에는 윤상태, 서상일, 이시영 선생 등이 모여 국권회복을 위한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결성하는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3. 1운동 이후에는 독립 운동가들을 위해 자금을 모으고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 민족의 수난에 함께 동참하였다.

 

 

    다음은 구보해 선사가 안일사(安逸寺)의 명칭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비슬산 위쪽으로 올라가면 안일사라는 절이 있다. 그 절은 원래 안일사(安逸寺)가 아니고 옛날에는 유성사라고 불렀다. 안일사, 그리고 안일사(安逸寺) 골짜기에 있는 왕굴, 팔공산 염불암 뒤에 있는 일인석 (一人石)이라는 큰 바위, 반야월, 안심 등의 명칭 반야월에서 쉬고 가고. 은적사에서 몸을 숨기고 왕굴에서 피난을 했다. 그래서 그 옆에 있던 유성사를 편안히 피난하고 쉬어갔으니 편안할 안(安), 편안할 일(逸일)로 하여 안일사(安逸寺)라 명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