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지장사(北地藏寺 )

전통사찰 등록 : 88년 7월 28일/도학동 620번지

 

 

 

   백안 삼거리에서 동화사 쪽으로 가다가 중간지점에 이르면 우측에 자연석 전시공원을 개인이 마련한 곳을 만나다. 우회전하면 도학동으로 가는 길이다.  마을 가운데를 지나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내리면 그곳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지장보살님과 인연이 지중한 대승의 이상향인 지장도량 북지장사를 만난다.

   고찰로서 동화사보다 8년 먼저인 신라 소지왕 7년(485년)에 극달화상이 창건한 천년고찰이 빛 바랜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맞는다.

   동화사, 파계사, 부인사 등 유수한 성지가 시대변천과 산업사회의 발달로 인하여 세간적 문명으로 크게 오염됨이 없고, 가히 원시림 그대로 보존된 성지인 북지장사다.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취사등의 행위는 절대불가의 천연원시림이 우거진 비경 속에 숨겨져 있다.

   북지장사에는 보물 제805호 지정된 대웅전(지장전)과 대구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6호인 삼층석탑 2기와 제15호인 지장보살좌상, 그리고 근래에 지어진 삼성각, 산신각, 요사, 일주문이 남아 있으나 대웅전은 건물지만 남아있다.  원래 대웅전은 소실되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대웅전 건물은 본래 지장보살님을 모신 지장전이다.

북지장사의 창건 설화.

  동촌에 거주하던 효행이 극진하고 유덕부요(有德富饒)한 류 정선처사가 풍수대가에 의하여   현재의 대웅전(지장전)자리를 묘지로 선정해 놓고 부친이 돌아가시자 미리 정해 놓은 무덤자리를 파헤치니 그 가운데 흡사 사람모양의 돌덩이가 하나 돌출 하므로서 모두가 이상스럽게 여기고 있는 순간, 상주 류 정선이 비몽사몽을 얻었는데 흰 소복의 스님 모습의 미인이 한 분 나타나서 "나는 지장보살이다. 이 자리는 묘지가 아니다. 이곳에는 절을 지어 많은 중생을 제도하여 참된 대효자가 되어라." 하고는 즉시 사라지셨다.

    이러한 영기로운 계시를 받고 지척거리인 인봉에서 걸식생활로 고행 수도하시는 극달선사의 간곡한 설법지시로 매장을 단념하고 화장을 치룬 후 출가스님이 되어 바로 이 자리에 사찰을 세우고 인형의 돌덩이는 지장보살으로 조각하여 모셨으므로 절 이름을 지장사라고 전해오고 있다.

    보살상이 현 대웅전 내 최 좌측 불단에 모셔져있으며 팔공산에서는 제일 오래된 보살상으로서 머리는 소발이며 왼손에 보주를 얹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놓은 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두부의 형태나 지물등으로 미루어 보아 지장보살이 틀림이 없다.

    법의는 통견으로 옷 주름의 조각선이 섬약하고 형식화하며 단정한 자태와 온화한 상호로 신라말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입구 일주문의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정면에 보인다.
 원래의 대웅전이 불에 타버려 지장전에 대웅전 현판을 걸고 사용하고 있다. 조선시대 중기의 모습을 잘 갖추어 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내부는 정자의 가구수법과 유사하며 불전의 가구로서는 특이한 예이다.

    절 주변에 고려시대 이전의 유물인 건물지, 기단, 석탑 등이 있다.  특히 임진왜란시는 사명대사께서 팔공산 전투 총본령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북지장사. 유서 깊은 비연이 간직되어 있는 절 뒤로는 인봉. 문필봉. 노적봉. 두지봉. 관봉 등 오봉이 병풍처럼 둘러쌓인 팔공산 정기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대명지이며 성지이다.

북지장사대웅전(보물 제805호)
석조지장보살좌상(石造地藏菩薩坐像, 유형문화재 제15호))
북지장사 삼층석탑(北地藏寺 三層石塔, 유형문화제 제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