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桐華寺)

전통사찰 등록: 88년 7월28일/도학동 35번지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誌)에서는
桐華則羅僧眞弘飛銀空中 銀止於比 逐建寺以居 地形廻合 屋宇宏傑  自古多名僧修行者
동화즉라승진홍비은공중 은지어비 축건사이거 지형회합 옥우굉걸  자고다명승수행자
동화사절은 신라시대 중 진홍대사가 은장(銀杖)을 하늘에 날려가 이곳에 떨어졌다. 그래서 이곳에 절을 지어 살았다. 땅의 형국은 좌우로 산맥이 에워싸 모여들었고 절 집은 매우 크고 웅장하다. 옛날부터 많은 이름 난 스님이 수도하였다.』

    팔공산(八公山)은 동화사(桐華寺)를 품에 안고 있다. 예로부터 팔공산을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받들며 아버지의 산이라는 부악(父岳) 모든 산의 중심이 있다는 중악(中岳), 국가의 공식 제사를 지내는 산이라 해서 공산(公山)등의 여러 이름이 있다

   동화사는 대구에서 동북쪽으로 약 22Km 떨어진 팔공산에 위치하고 있고,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로 대구광역시를 비롯하여 달성군, 칠곡군, 청도군, 성주군 등에 산재한 90여개 사찰을 거느리고 있는 대사찰이다.

   신라시대의 명찰로 잘 알려진 동화사는 병풍처럼 둘러 쌓인 팔공산 남릉(南綾) 사면에 위치하고 있어 봉우리마다 발원하는 맑고 깨끗한 계곡을 형성하고 천 길이나 되는 높은 낭떠러지의 기괴한 절벽과 기암괴석. 폭포들이 수목들과 어우려져 선경(仙境)을 이루고 있으며, 그 주변에 부도암, 양진암, 염불암, 등 많은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는 신라 소지왕 15년(493년) 극달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라(瑜伽寺) 불렀으나 흥덕왕 7년(832년)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건(重建)할 때 사찰 주변에 오동나무(쌍떡잎식물 합판화군 통화식물목 현삼과의 낙엽교목) 꽃이 만발하여 있어 동화사라 개칭하였다고 전하고  8번의 중창을 거듭하였다.

   팔공산4000년 자료에서는 『동화사의 창건시의 사명을 유가사(瑜伽寺)라 했다는 것은 허구다, 창건아래 동수(桐藪)라고 불렀다. 신라시대는 동사(桐寺)라 했지 동화사(桐華寺)라 하지 않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권(卷)2 기이제(紀異第)2 후백제견선?(後百濟甄宣??)에 동수망이궤산(桐藪望而潰散)이라고 동수(桐藪)라 하고 민애대왕 석탑기(敏哀大王 石塔記)에도 동수원당(桐藪願堂)이라 쓰여 있고 경북대학 윤용진교수가 조사한 팔공산 용수동 와요지 조사보고서(1986)에 桐藪彌勒堂이란 銘文의 瓦當과 최치원이 지은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新羅壽昌君護國城八角燈樓記)에 동사(桐寺)라 쓰인 곳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유가사(瑜伽寺)라는 사명을 한번도 칭한적이 없다. 고려시대는 유가종 동화사라 했지 지척인 포산에 유가사란 사찰이 있다. 그러므로 인근에 동일사명을 썼을 리가 만무하다.』

   동화사(桐華寺)는 150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사찰이기 때문에 경내에는 많은 불교 유산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동화사 입구 마애불 좌상, 금당암 3층 석탑, 당간지주, 석조 부도는 보물로 지정되어 보존 관리되고 있다.

   동화사 경내의 제일문인 봉황문으로부터 중심문인 '옹호문'에 이르는 과정은 다른 사찰에 비해 휠씬 긴 편이며, 그 과정에 많은 비석과 석탑들이 산재해 있다.  동화사에 이르는 길은 '팔공산 동화사 봉화문' 이라는 편액 일주문을 지나 옹호문으로 이어지는 계곡의 오솔길과 서쪽의 팔공산 도로와 연결된 샛길의 두길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옹호문을 헐어버린 이유를 알 수 없으나 통일대불 건립을 위하여 새로 만든 길이 주 통로가 되고 옛날의 길은 산책로로 만들어 두었다. 지금은 헐어버렸지만 이 옹호문은 사천왕을 모신 곳으로 다른 절에서는 보통 천왕문이라는 문액이 걸리는 법인데, 사천왕의 직능을 강조한 내용으로 격조 있는 명칭이다.  글씨는 백하 윤 순(1680~1741)글씨와 방불한 동국진체풍인데 희귀하게도 '숭정기원후 재기미십이월 굉열(崇禎紀元後 再己未十二月 宏悅)'이라는 방서를 붙여 놓고 있어 영조15년(1739년)에 씌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세로획(劃)이 가늘고 가로획을 굵게 하며 왼쪽보다 오른쪽을 무겁게 하는 것은 동국진체의 특징으로 이것이 장차 추사체로도 이어지는 우리 서체의 고유색인데 이런 특색이 두르러 지게 나타나 있다.

   문안에는 사천왕의 그림으로 그려져 봉안되어 있다. 화기가 분명하지 않아 언제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으나 군청 빛깔이 탁한 것을 보면 고종 연간을 넘어설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림 솜씨는 비범하여 당대 고수의 작품이라 할 만하다.

   옹호문을 지나면 바로 바깥마당 건너편으로 내정 누문인 봉서루가 나온다. 봉황은 오동나무 숲에만 깃든다 하니 오동꽃이라는  절이름에 걸맞는 누각 이름이다. 아래층에 네모난 돌기둥을 세워 누문을 만들고 그 위에 정면 5칸의 목조 누각을 세운 건축 형태이다. 봉서루 뒤편에는 영남치영아문(嶺南緇營牙門)의 현판이 걸려 있다. 동화사가 경상도 승군의 총지휘소 이었음을 알려 주는 현판이다. 봉서루 누대 밑을 지나 절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바로 대웅전이 마주 보이고 우측에 강생원이 있고, 좌측에 심검당이 있다.

    대웅전 축대 아래에는 한 쌍의 괘불대(掛佛臺)와 노주(露柱)가 서있고, 축대를 오르는 층계는 정면에 반원형으로 쌓아 올렸다. 아마 근대에 보수한 듯하다.  대웅전 현판글씨도 옹호문 글씨와 같은 필체로 매우 세련된 동국진체풍이다. 아마 한 사람 솜씨일 것이다.

 

 

 

동화사 입구 마애불(桐華寺 入口 磨崖佛座像, 보물 제243호)
동화사 비로암(同華寺 毘盧庵) 석조비로나자불좌상(보물 제244호)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桐華寺 毘盧庵 三層石塔, 보물 제247호)
 동화사의 동탑 서탑(同華寺 東塔 西塔, 보물248호)
동화사 당간지주(桐華寺 幢竿支柱, 보물 제254호)
달성도학동 석조부도(達成 道鶴洞 石造浮屠, 보물 제601호)

동화사 수마제전(桐華寺 須摩提殿, 문화재자료 제16호)
사명당대장 진영(泗溟堂大將 眞影, 문화재자료 제26호)
부도암 부도(浮屠庵 浮屠, 문화재자료 제34호)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八空山 磨崖藥師如來坐像, 유형문화재 제3호)
대웅전(大雄殿, 유형문화재 제10호)
극락전(極樂殿, 유형문화재 제11호)
동화사 부도군(桐華寺 浮屠群, 유형문화재 제12호)
염불안 마애여래좌상 및 보살좌상(念佛庵 磨崖如來坐像 및 普薩坐像, 유형문화재 제14호)
동화사 염불암 청석탑(유형문화재 제19호)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유형문화재 제20호)

인악대사 비각(人嶽大師碑閣)
팔공산
팔공산의 지명내력 

칠성각(七星閣) : 칠성각에는 함풍(咸豊) 7년(철종, 1857년)에 그려진 삼존(三尊)형식의 칠성탱을 배관
                         하고 조사전(祖師殿)에 들으면 초창주(初創主)라는 극달화상(極達和尙)과 중창주 심지
                         왕사(心地王師) 및 사명대사의 초상이 사진판으로 봉안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