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적사(隱跡寺)

 

 

 

   은적사는 대명 6동 앞산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에는 잘 찾지 않았으나 앞산이 공원화되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에 비해 안일사는 은적사와 함께 유서가 깊고 옛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들었다 한다.

    이 절은 고려 태조 왕건과 연관이 있다. 신라 말 후삼국 때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침범하였다. 나라가 위태롭게된 신라는 고려 왕건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이에 왕건은 신라를 돕고자 군사를 이끌고 적과 맞섰으나 의외로 대패하고 은적사에 몸을 숨겼다. 견훤의 추적을 피해 왕건은 당시 안일사까지 피신했다.

   안일사 뒤에 있는 큰 굴에 피신하기도 하였고 왕이 머물렀다 해서 왕굴이라 부르고, 그와 함께 조금 아래에 장군들이 머물렀다 하여 장군굴이라고 한다. 또 그 밑에는 물을 마신 샘이 있다 하여 장군수라고 불린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왕건은 처음 몸을 숨겼던 곳에 절을 세우게 하고 절의 이름을 은적사라 하였다.

   은적사는 서기 926년 신라 경애왕 3년에 창건된 절로서 은적사란 이름이 생기게 된 연유는 신라말  후삼국때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자 신라 경애왕이 고려 왕건에 구원을 요청했다. 구원병과 대구에 온 왕건은 견훤의 공격에 팔공산 동화사 방면으로 가다 산기슭에서 견훤 군대에 포위당했다. 이에 왕건은 부하 신숭겸의 계책으로 탈출했다.

   그 계책은 신숭겸이 왕건의 옷을 입고, 팔공산 중턱으로 가 신숭겸이 부하에 체포되는 순간 왕건이 탈출하는 것이었다. 현재 당시에 계책을 세웠던 곳에 신숭겸의 후손이 사당을 지어 그를 추모하고 있다. 또 묘하게 지혜를 썼다 하여 현재 지묘동이란 동명이 생겼다.

    탈출한 왕건은 현재 은적사 대웅전 우측의 대나무 숲속에 있는 자연동굴에 숨었다. 왕건이 굴에 숨자 왕거미가 출입구에 거미줄을 쳐 견훤의 추격 병들로부터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 굴에서 3일간 머물고 현재 안일암이 있는 곳에서, 3개월 쉰 왕건은 김천 황악산을 경유해 철원으로 회군했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왕건은 자신이 숨어 3일간 보낸 굴이 있는 곳에다 당시의 고승 영도대사에 명해 숨을 은자 자취 적자로 은적사라는 절을 짓게 했다. 이것이 은적사가 생긴 연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