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하천

    대구광역시 중구(大邱廣域市 中區) 관할 내에는 192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지상에 노출된 하천(河川)이 비록 규모가 작기는 하나 여러 갈래로 남아 있었다. 그것이 1930년대 부터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여 지금은 극히 일부만이 남아 겨우 흔적을 남길 정도가 되었다. 여기서의 이야기는 한 내(川)가 소멸되는 과정을 통해서 변모하는 대구의 모습과 주변에 일어난 변화를 엮은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고장은 한 순간도 멈춤없이 그 모습을 바꿔왔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 변모는 눈에 띄지 않으리만큼 미미하게 진행되는 형상도 있겠으나 일 순간에 일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형(地形)만 보더라도 사계절의 반복 및 풍우(風雨)로 일어나는 암석의 풍화, 토지의 미미한 퇴적 및 유실은 일시에 볼 수 없는 변화일 것이고, 홍수나 태풍으로 일어나는 변화는 순식간에 형태를 바꿔 버리는 변화라 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섭게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사람의 힘이다. 사람에 의한 변화는 홍수나 태풍처럼 자연현상으로 인해 진행되는 변화와는 유형(類型)을 달리한다.

   평지(平地)나 구릉지(丘陵地)를 개간한다, 도로(道路)를 건설한다, 제방을 쌓는다, 부성(府城)을 구축한다, 취락,도시(聚落,都市)를 건설하는 등의 변화는 분명히 자연의 변화와는 유형을 달리한다. 거기에는 전근대(前近代)에서 보는 것처럼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도 있겠으나 기계를 동원한 대규모 토목공사처럼 자연의 변화보다 더 큰 규모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여기서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작은 河川도 자연현상에 의해 소실된 것이 아니고 일부 사람들의 이익추구로 인해 자취를 감추어 버렸던 것이다.

    대구(大邱)를 대상으로 한 지도(地圖)로 오랜 것으로는 조선후기(朝鮮後期)인 18세기 경에 작성한 읍지(邑誌)에 처음으로 보인다. 이는 간략한 조감도의 형태로 부성내(府城內)에 배치된 중요 관아건물의 위치와 주변의 山, 川, 府城 밖으로 이어지는 道路가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다. 당시로서는 대구를 이해시키는 최선의 지도였다.

    이와는 달리 근대적인 서구식 측량법(西歐式 測量法)에 의한 지도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제작된다. 그것도 우리 손에 의해서 작도(作圖)된 것이 아니고 외국인에 의해서 작성되었다.

    개화기(開化期)에 우리 자체에서 근대화(近代化)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지도(地圖)제작에 있어서는 발빠른 움직임을 하지 못하고 외국인에 의해 그들의 침략적(侵略的) 필요성에 의해 작도(作圖)되었다.

    서구식 측량에 의한 대구지도는 기록상으로는 1904년, 당시 대구에 거류(居留)했던 日本人에 의해서 시가도(市街圖) 및 경지구획도(耕地區劃圖)로써 만들어졌다. 당시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地圖)는 출판된 책자에 전해지고 있다.

   1905년의 지도을 보면 그 내용에 부성(府城)이 있고, 기록된 地名이 조선시대의 옛 지명으로 되어 있는 점 등으로 보아서 부성(府城)이 철거되기 전에  측량했던 지도이다. 大邱의 부성(府城)이 철거된 것은 1907년이므로 그 이전에 작성된 것이며 또한 경부선 철도(京釜線 鐵道)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1905년 이후가 된다.   또 한 장(揷圖 2)의 지도(地圖)는 大邱 주변의 지형(地形)을 등고측량(等高測量)한 지도로 地名은 고유의 지명이고 철도로선(鐵道路線)이 그려져 있지 않은 내용으로 보아서 경부선 철도노선(京釜線 鐵道路線)이 확정되기 전에 작성된 지도이다.

    이 두 종류의 지도는 개화기(開化期)의 대구부성(大邱府城)과 지리적(地理的) 환경을 복원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어준다. 이는 읍지(邑誌)에서 볼 수 있는 山川을 서구식(西歐式)으로 작도(作圖)했다는 것 외에도 지형(地形)과 위치를 정확하게 기록한 지도인 것이다.

   그리고 일제강점(日帝强占)이 시작되는 1910년 이후에 제작되는 지도는 좀 더 상세하고 정확성을 나타낸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작은 河川도 이 무렵에 제작된 지도에 비로소 나타난다.

    이 당시의 조선교통지도(朝鮮交通揷圖)를 보면 대구분지(大邱盆地)를 관류(貫流)하는 河川에는 新川 외에도 中區를 통과하는 작은 하천들이 그려져 있다. 고산골과 봉덕동의 구릉지에서 발원(發源)하여 이천동, 봉산동의 건들바위 앞을 지나면서 두 갈래로 갈라져서 흘러내렸음을 볼 수 있다.

두 갈래 가운데 한 갈래는 유신학원 네거리, 중앙도서관, 대구시청 옆을 지나 칠성시장을 통과한 다음 경대교 가까이에서 新川에 유입(流入)되고 다른 한 갈래는 건들바위를 지나 덕산동의 구릉지 가장자리를 돌아서 반월당 네거리, 계산성당 앞을 거쳐, 대명동과 남산동 일대의  구릉지에서 흘러내린 또 다른 하천과 東山 아래에서 합류(合流)한 다음, 인교동을 지나 달성공원 앞에서 다시 내당동, 비산동 구릉지로부터 흘러나온 하천(河川)과 합류(合流)하여 침산동에서 금호강(琴湖江)으로 유입(流入)한다.

    그러나 지금은 봉덕동과 이천동에서 흘러 내렸던 하천(河川)은 모두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대명동, 남산동 구릉지(丘陵地)에서 흘렀던 하천(河川)만이 비록 복개되기는 하였으나 하천의 기능을 그나마 유지하고 있다.